겨울 강가에서 

 

                    김경미

 

눈과 함께 쏟아지는
저 송곳니들의 말을 잘 들어두거라 딸아
언 강밑을 흐르며
모진 바위 둥글리는 저 물살도
네 가슴 가장 여린 살결에
깊이 옮겨두거라
손발 없는 물고기들이
지느러미 하나로도
어떻게 길을 내는지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

우리는 세가지 방법으로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 하나는 사색이다. 이것은 가장 고상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모방이다.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셋째는 경험이다. 이것은 가장 쓰라린 길이다.

 - 공자 -

그해 봄에는


                      김경미


가슴마다 맺힌 산맥들 길을 주고
봄에는 푸른 땅으로 나서자
산과 들마다 걸려 넘어진 사랑 일으켜 안아
이 땅 끝까지 가랑비로 얼굴 맞대보자


봄엔 어딘들 못 나서랴
봄엔 뉜들 얼굴 맞대지 못하랴

..................................................

비가 온다.
분명 봄비다.


지난 주말, 눈처럼 벗꽃 잎 흩날리더니
어느새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싹 가득하다.


흐드러지게 핀 꽃잔치 구경도 못했는데,
이젠 한풀 꺾인 꽃마당
흩어진 꽃잎 쓸어담기에 더 바빠졌다.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려나 보다.


오늘은 비가 온다.
분명 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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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는 것일까


                                    김경미


1.
약속시간 삼십 분을 지나서 연락된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국화꽃잎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웃었다
불참한 이도, 더 와야 할 이도 없었다
식사와 담소가 달그락대고 마음들 더욱 당겨앉는데

문득 고개가 들린다 아무래도 누가 안 온 것 같다
잠깐씩 말 끊길 때마다 꼭 와야 할 사람 안 온 듯
출입문을 본다 나만이 아니다 다들 한 번씩 아무래도
누가 덜 온 것 같아 다 모인 친형제들 같은 데 왜
자꾸 누군가가 빠진 것 같지? 한 번씩들 말하며

두 시간쯤 지났다 여전히 제비꽃들 처럼 즐거운데
웃다가 또 문득 입들을 다문다 아무래도 누가 먼저
일어나 간 것 같아 꼭 있어야 할 누가 서운케도 먼저
가버려 맥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자꾸 둘러본다


2
누굴까 누가 사는 것일까 늘 안 오고 있다가 먼저 간
빈자리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저 기척은 기척뿐
아무리 해도 볼 수 없는 그들에겐 또 기척뿐일까 우리도
생은 그렇게 접시의 빠진 이 아무리 다 모여도
상실의 기척 더 큰 생은

.....................................................................................

연초가 되고 보니, 또 이런 저런 계획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찾아낸 영수증 몇 장과
이제는 책장 구석 한 켠으로 가게 될 다이어리에
띄엄띄엄 적힌 글씨들이 눈에 띈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연말 모임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무사한 얼굴 한 번씩은 봤구나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유난히 이별이 많았던 2009년을 이제 접는다.
그리곤 새 다이어리에 가족들과 모임 친구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그래, 올 때는 이렇게 순서가 있었는데...
그래도 언제 태어났는지는 다 알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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