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의자

                       김기택


묵묵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늦은 저녁, 의자는 내게 늙은 잔등을 내민다.
나는 곤한 다리와 무거운 엉덩이를
털썩, 그 위에 주저앉힌다.
의자의 관절마다 나직한 비명이
삐걱거리며 새어나온다.
가는 다리에 근육과 심줄이 돋고
의자는 간신히 평온해진다.
여러 번 넘어졌지만
한 번도 누워본 적이 없는 의자여,
어쩌다 넘어지면,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허공에 다리를 쳐들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의자여,
걸을 줄도 모르면서 너는
고집스럽게 네 발로 서고 싶어하는구나.
달릴 줄도 모르면서 너는
주인을 태우고 싶어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네 위에 앉는 것이 불안하다.
내 엉덩이 밑에서 떨고 있는 너의 등뼈가
몹시 힘겹게 느껴진다.
........................................................................

시간이 흐르면 변해가는 것.
스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언제까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 더 자라지 못한 지 이미 오래,
혹시 더 깊어지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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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 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 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

낡은 의자의 기도


의자로 태어나 살 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잘 갖춘 모양새로 사랑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잠시 쉬어갈 곳이 됨을 감사합니다.
온전히 한 자리 지켜내게 함을 감사합니다.
그들을 무릎을 굽혀 똑바로 앉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마주 하기 무섭게 등 돌리고 돌아앉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심에 감사합니다.
발 뻗고 기대앉은 자들의 무례함을 받아주심을 또한 감사합니다.
가끔 나를 밀치고 넘어뜨려도 모두 잘 인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비록 낡고 부서져 더 이상 쓸모없어지더라도
아무런 후회 남지 않음을 또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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