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임길택

 

마루 끝에 서서
한 손 기둥을 잡고
떨어지는 처마 물에
손을 내밀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처마 물이 떨어질 때마다
톡 탁 톡 탁
손바닥에서 퍼져 나갔다.
 

물방울들 무게
온몸으로 전해졌다.
 

손바닥 안이
간지러웠다.

...................................................................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장맛비가
내일 닦을까 모레 닦을까 미뤄두던
유리창을 말끔히 씻어놓는다.
쏟아지는 장대비가 오히려 반가운 아침이다.

답답했던 기분도,
어지러웠던 마음도
깨끗히 씻겨내리는 기분


무게를 던 구름
가벼워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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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나태주


비 개인 아침 숲에 들면
가슴을 후벼내는
비의 살내음.
숲의 샅내음.


천 갈래 만 갈래 산새들은 비단 색실을 푸오.
햇빛보다 더 밝고 정겨운 그늘에
시냇물은 찌글찌글 벌레들인 양 소색이오.


비 개인 아침 숲 속에 들면
아, 눈물 비린내. 눈물 비린내.
나를 찾아오다가 어디만큼 너는
다리 아파 주저앉아 울고 있는가
.............................................................

 

이른 새벽 창밖 풍경이 희미하다.
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이렇게 부옇게 창문 가득 적시며 비 흩뿌리는 날,
바깥 풍경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오랜만에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느라 잠시 분주하다.
메마른 땅위에 빗방울 톡톡 떨어지며 먼지내 솔솔 풍기는 음악,
가슴 한 켠 아련하게, 비릿하게 젖어드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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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듣는 소리

 

                         최승범

 

호박잎 비 듣는 소리

휘몰이 장단이다.

 

어 시원하다

어 시원하다

 

목이 탄

푸성귀들은

신바람에

자지러진다.

.............................................................

우중충한 도심에서 맞는 빗소리와

자연 속에서 듣는 비 듣는 소리는 

그 느낌부터가 사뭇 다르겠지요.

 

연이어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의지할 곳 없는 우리만 덩그러니 남게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차피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음인데,

너무도 자연스런 일일텐데 말입니다...

 

마른 땅에 단 비 내리듯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신바람에 자지러질만한 일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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