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


                                         유용


내 나이 여섯살 적에
아버지와 함께 간 그 허름한 식당,
그 옆에 냄새나는 변소,
그 앞에 묶여 있던 양치기,
는 그렇게 묶인 채로 내 엉덩이를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안 물어.
그 새끼 그 개만도 못한 주인새끼의
그 말만은 믿지 말았어야 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번번이 짖는 개에게 물렸다.


사랑을 부르짖는 개,
는 교회에서 나를 물어 뜯었다.
정의를 부르짖는 개,
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덮쳤다.
예술을 부르짖는 개,
는 백주대로에서 내 빵을 훔쳐 달아났다.


괜찮다, 괜찮다,
는 개소리는 지금도 내 엉덩이를 노린다.
괜찮아, 괜찮아, 물지 않을 거야.
저 새끼 저 개만도 못한 새끼의
싸늘한 속삭임을 나는 도시 믿을 수 없다.
....................................................................

욕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돌아서서 저주를 퍼부어 주고 싶은 때가 있다.
도대체 말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아,
마구 두들겨 패주고 싶은 때가 있다.


살다보면...
다행히 그리 많지는 않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참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순간이다.


아주 가끔은
개새끼, 돼지새끼들과 섞여 사는 게
짜증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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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짧은 그리움. 아니, 그, 디, 움,


                                                          유용선


그는 언제나 그리움을 그,디,움, 이라 발음한다
그런 그에게 그, 리, 움, 을 강요하면 그, 디, 움, 한다
사람 좋은 그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희미하게 바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그는 언눅으로 남았을 옛사당의 그딤자를,
유부남인 나는 웃으며
친정에 가 있는 아내가 아쉽다고,
노총각인 그는 훌쩍거리며
다든 사내의 아내가 된 그 여자가 그딥다고,
마주앉아 주절거리며 술잔을 비워댔다.
내 말은 꽃같이 피었다가 시들고
그의 말은 불길이 되어 내 가슴을 데이게 했다
그의 천부적인 어눌함을 부러워하며,
매끄러운 나의 혀를 부끄러워하며,
마침내 내 중얼거림 속에서 사랑이 사당이 되었을 때,
그는 시, 나는 말이 되고,
그는 예술, 나는 현실이 되어,
시와 예술은 자취방으로, 말과 현실은 자기 집으로 향했다
그디운 사담 옆에 누워있지 않은 외도운 밤을 향하여

..................................................................................
다 지난 이야기이기에
우리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
술 한잔에 그리움도 달래고
추억이라고 예쁘게 포장도 하고
알코올로 채운 풍선도 불어 띄워보내지
모두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그 순수한 마음만은 간직하여라
시리고, 아프고,
사무치게 그리울진데...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그림이 되어
허무의 공간을 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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