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음화 (陰畵)


                                  김혜순

 

오늘 아침에는 아직도 우리가
피난중이라는 생각
아직도 어린 새끼 등에 업고
총칼 대포 피해 피난 보따리 이고 지고
우왕좌왕 쫓기는 꿩떼 같다는 생각


누가 굶어죽는지 누가 얼어죽는지
걸음아 나 살려라 힘껏 내달린다는 생각
이 보따리 잃을까 이 보따리 빼앗길까
웅크리고 두리번거린다는 생각


(누가 이리 꽃 묶어놓았나 피난 보따리
우리들의 골통 보따리
들어온 것 못 나가고
나간 것 못 들어오라고
누가 와 자근자근 밟아놓았나
무덤 보따리)


오늘 아침 청계천을 꽉 메운 차들
내려다보고 있을 때 문득 스치는 풍경
길고 긴 피난민 행렬, 우리들의 무의식
울지도 못하고 떠밀려가는 보따리 행렬
죽어서도 못 썩을 우리들의 음화 (陰畵)
.....................................................................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어 던져야
새 옷을 입고 세상을 향해 나설 것이다.
과감히 탈피(脫皮)해야 날개를 펴고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아무 생각없이 파내려 간 구덩이에
내가 꼼짝없이 갇힐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든
사랑이든
욕망이든...


행여 그 속에 내가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잘 살펴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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