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첼로의 레퀴엠


                             강미영


몸 안으로 팔도 구겨 넣고
다리도 쑤셔 넣는다
음악이 된다


케이스 안에 갇혀 있는 남자
몸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제 살 뜯어내며
케이스 안에 갇혀 있다


양 어깨에 걸쳐진 다리 사이
세상으로 뛰쳐나간 귀들
달팽이 의자에 앉힌다
현의 여자
활의 여자
뼈를 깎고 사는 허리 잘룩한 자웅동체
불두덩 더듬거리며
날마다 수음하는
꿈을 꾼다


그 남자는 첼로
케이스 안 낡은 방에서
오늘도 음악 같은
수음을 한다
..................................................

내 감각의 발정을 달래기위해 행해왔던
수음의 횟수가 늘어가고
말초신경이 무뎌져 가면서
더 이상 발기되지 않는 내 몸...


탄력없어진 피부에 묵은 때처럼 쌓여가는
편견, 고정관념 그리고 독선...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이제는 감각적인 것에서 풀려나는 것.
감정의 묵은 때, 관념의 껍질을 계속 벗겨내야 하는 것.
더 이상 늙어가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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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사러 가는 길

 

                                        이정란
 

무궁화 악기점 진열대에 첼로가 서 있다
유리창에 이마를 들이대고
초롱한 눈빛으로 창 밖 거리의 악보를 읽는다
첼로의 느슨한 줄이 내 눈길 쪽으로 당겨지자
도시의 오후가 팽팽해지고
음을 맞추는 소리 붕붕거린다
유리창 안에 어른거리던 노래의 한쪽 문이
열리고 파도치듯 흘러나온
세바스찬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이
가을비에 떨어진 은행잎의 속살 속으로
아득히 젖어든다
생의 한 줄이 끊어진 사람들의
잃어버린 음표가
굵어지는 빗소리에 떠내려간다
부르튼 손가락으로 슬픔을 짚어 가는
얼굴들을 매단 낡은 악상 한 대
신호등에 걸려 주춤거린다
마지막 한 소절을 향해 달려간다
누군가 가슴줄을 뜯고 있을 때
소리를 잃은 관악기들이 목쉰 울음을 꺾어
삼키며 지하에 웅크려 선잠을 잔다

................................................................

 

요즘 통기타를 한 대 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있는 기타도 제대로 퉁길 일이 없이
거치대에 늘상 멀거니 서 있는데 말이다.
이제와서 특별히 소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갖고 싶은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 눈에 들어온 기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통기타 소리가 그립고
통기타의 울림을 가슴팍으로 듣고 싶고

 

그립다.

 

그래...
세바스찬 바하의 무반주 협주곡도 듣고 싶다.

 

그러고 보니....
DSLR 카메라도 한 대 갖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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