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결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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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깃든 청춘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는 카로사의 말처럼,


우리는 끝내 늙지 못한다.
가슴에 사랑이 있는 한.

   4월

 

                         오세영

 

언제 우뢰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 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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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시인, 자연의 시인 오세영님의 시입니다.

4월이 격정적인 것은, 열광적인 이유는 아마도

사방천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잔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시들어 지고, 흩어져 뿌려지는 꽃의 주검들...

그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이별...

하지만 4월이 공허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푸르러, 짙푸르러 우거져 숲을 이루는 綠蔭의

푸른 생명의 생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잎이 피고, 줄기가 굵어지며, 뿌리가 깊어져,

나무가 숲을 이루고 산을 이루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4월이 격정적인 것은, 열광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제 곧 시작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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