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다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세월이 흘러 끝났다고 하기엔 너무 짧고
그냥 지나쳐버려 끝났다고 하기엔 너무 허무하고

이제는 마음이 변해 끝났다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고
그냥 잊혀져버려 끝났다고 하기엔 아직 너무 뜨겁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동 시대 젊은 지성들의
뒤통수 제대로 한 번 갈겨주었던 그녀도 이제
하늘의 명을 알게되는 나이가 가까웠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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