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뭇 그리고 어렴풋
이상교
잠깐,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돌고 오겠다던 당신은
한 시간 남짓이도록 돌아오지 않고,
어딜 향해
당신을 찾아나서야 할 것인가.
눈 녹는 어스름 겨울 저녁 까마귀보다
더 깊고 음울한 눈을 하고서.
마침내 어둠 저편을 뚫고 들려온 당신의
외마디 부름 소리
여보세요...
내 목소리 여전히 당신 귀 앞에 생생하고
내 귓가에서는 흐릿하게 사라지려 하는
지우개로 지워지기 직전의
당신 숨차하는 목소리,
잘 안들려요! 다시 전화하세요!
어느 날, 문득, 저녁, 혹시라도 당신이 ,
자리를 비우고 말았을 적,
나의 두 귀 맡에 幻聽이듯
여보세요....여보세요....
당신 목소리 바람으로 닿았다 흩어질지 몰라.
작정하고 찾아 나서기로 한 그때부터
내 두 눈엔 아무 것도 들지 않아.
당신 패인 두 볼 한번이라도 착실히
아프게 눈여기려면.
......................................................................................
요즘들어 확실히 만남보다 이별이 잦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헤어짐은 우리가 어쩔수 없는,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
하지만 남겨진 자...
잊어야만 하는 숙제가 남겨지고,
돌아서 가려해도 멀리가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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