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무의 저편
김선우
웃통 벗고 수박을 먹는데
발가락에 앉았다 젖무덤을 파고드는
파리 한마리
손사래도 귀찮아 노려보는데
흡, 부패의 증거인지도 몰라
눈치 챈 걸까 이제 아무도 못 믿게 돼버린 걸
구겨진 발톱, 숱하게 생발을 앓아온 희망에게
내밀 수 있는 건 소화제 몇 알
비굴하지 않게 예스라고
말할 줄 알게 된 것도 다 들통나버린 걸까
질기고 안전한 아랫배 속에서
냄새를 피우는 영혼의 끌탕
(왜, 노출된 내장만이 추한 것일까)
섹스하고 싶어,라는 말 대신
미치도록 사랑해 널,
그의 내부도 부패중인 걸까
어지러워, 나의 절정에
왕성하게 생식하는 저 황홀한 잡균들!
.................................................................
문득 내 젊은 날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시절 내 판단과 사고의 틀은 과연 어땠던가?
불과 10여년 전 이 시를 읽었을 때,
그녀의 관능적인 언어와 감각적인 상징에 열광했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값싼 유희처럼 느껴지는지...
그녀의 시가 단 한 글자도 변하지 않았을텐데,
내 태도는 어딘가 변해있다.
자칫...
마음이 닫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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