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암 오르는 길


                              강영은


커다란 바위 위 민달팽이 한 마리
오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에 아랑곳 않고
꼼짝없이 앉아 있다
아니다,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를
내 몸의 속도가 측량하고 만 것인데
달팽이도 제 몸을 스쳐 지나간 나를
바람이거나 햇빛의 결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제 몸을 밀어
달팽이가 당도한 저, 등속도의 삶 속에는
몇 억 광년의 길을 달려온 별빛도
가만히 제 빛을 내려놓고 있으리라
삶의 방향을 트는 몸 밖의 표면장력 때문일까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니
달팽이 대신 달팽이가 지나 온 길들이
바위를 꽉 붙들고 있다
이제, 저 바위가 뒹굴거나 구르면서
제 몸에 새겨진 길들을 비워내리라
계곡을 따라 여기저기 흐르는 핸드폰 소리
문명의 소리도 이파리처럼 무성하게 우거진
관악산, 연주암 오르는 길,
배낭을 짊어지고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정상을 향한다
속도로 꽉 차 있다
..................................................................

그래, 분명한 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빠른 목표 달성이 목적이 되는 게 삶이 아니라,
그 삶의 과정이 중시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 것 같다.


어떤 이는 하루를 감사하며 살기가 너무 어렵단다.
돈이 없고, 건강이 없고, 사랑이 없고, 행복이 없단다.
남들 다 있는 데, 내겐 없단다.


거저 부여받은 이 수많은 신의 은혜에도 삶을 감사할 줄 모른다
공기도 물도 햇볕도 육신도 모두 거저 주셨는데...
살라고, 맘껏 살아보라고...


앞을 잘 보고 살아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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