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고영민


배롱나무의 꽃이 지고 있다
배롱나무의 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녁마다 숱한 꽃다발을 내게 바쳤으나
나는 미욱해 그걸 다 받아주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꽃다발을 바치는 것
저녁 늦게까지 온몸이 꽃다발이 되어
들고 서 있는 것


그럴 때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갖고 있었을까
꽃들은 지나온 시간의 모든 것을 품은 채
떨어져 있다
밑동을 만지면
먼 가지의 꽃이 흔들리던 나무
바닥의 꽃들은 아직 붉고
바람은 그늘 속에 엎드려
미루어놓은 말들로 중얼거리고


지난 것은 다 진 것일까
나도 한때 누군가를 위해 꽃 한 다발을 들고
오래오래 문밖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빈손의, 어둠에 몰두해 있는
배롱나무에게
................................................................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나눠주는 것
하지만 온전히 전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지닌 것을 모두 버리는 것
다시 주워담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지 않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아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먼 길을 떠나는 것
가다 가다 헤어져도, 다른 길을 가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다시 만나 그 동안의 이야기 나눌 때
그게 사랑이었는지 다시 묻지 않아도
시린 빈 손 한 번 잡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을...


이 생에서
꽃이 피는 시간은 찰라에 불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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