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쓸쓸하여

                         
                                 도종환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넘길 새도 없이
며칠째 풀어 헤친 앞섶도 추스리지 못하고 있는데
또 메마른 마음 밭에 바람이 분다


잠시 머물다 일어난 자리마다
마른 먼지가 풀썩풀썩 인다.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등을 돌려본다.
그런데 왼가슴 켠이 무척 시리다


가까이 있다고
더 많이 들어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더할수록 메말라가는 생각,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
혼자 할 수록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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