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이형기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노을도 갈앉은
저녁 하늘에
눈먼 우화는 끝났다더라


한 색 보라도 칠을 하고
길 아닌 천리를
더듬어 가면....


푸른 꿈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꽃잎 지거라.
꽃잎 지거라.


산 너머 산 너머에 네가 오듯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

언젠가부터 떠들썩하던 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진 풀 숲에
한가한 귀뚜라미 소리가 나즈막히 들리고,

 

새벽부터 창문 두드리는 빗소리에

서둘러 잠이 깨고,


선잠을 채 털어내지 못한 맨 살에 닿는

서늘한 새벽공기에 소름이 돋는 걸 보니,


이제
가을이 오시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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