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물
한광구
비 오시는 소리 들린다.
꿈이 마르는 나이라서 잠귀도 엷어진다.
아, 푸욱 잠들고 싶다.
한 사나흘 푸욱 젖어 살고 싶다.
..........................................................
주룩비를 맞고 산 길을 오른다.
이제는 많이 왔겠거니 싶었는데
한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풍광이 발목을 묵직하게 잡는다.
축축히 젖은 배낭 잠깐 놓을 양이었는데
땅도 길도 모두 젖어
마땅히 내려 놓고 쉴 곳이 없다.
땀인지 빗물인지
자꾸만 눈두덩을 타고 흘러내려 눈을 가리고
비 맞은 옷과 배낭은 한없이 무겁다.
잠시의 휴식조차 변변히 찾을 길이 없으니
당장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어깨 위로 머리 위로 솔솔 피어오른다.
얼마나 왔는지 알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니...
비는 계속 내려도 상관없다.
앞 길에 마음을 더 기울이는 게 맞으니...
수건으로 흐른 땀 쓰윽 한 번 훔쳐내고
풀린 허리끈 다시 바짝 졸라 매고
그새 조금 가뿐해진 발길을 옮긴다.
'명시 감상 5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병률...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0) | 2013.09.30 |
---|---|
도종환... 들국화 (0) | 2013.09.30 |
이형기... 비 오는 날 (0) | 2013.09.23 |
이정록... 내 품에, 그대 눈물을 (0) | 2013.09.23 |
한용운... 복종 (0) | 2013.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