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김선우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애
함석집 마당가 주문을 걸 듯
덮어놓은 고운 흙 가만 헤치면
속눈썹처럼 나타나던 좋.아.해
얼레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
미안해 - 흙글씨 새기던
당두마을 그애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이사오고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나는 남자를 알고
귀향길에 때때로 소문만 듣던 그애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갔다는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때로 간이역을 생각했다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 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철공일 한다는
출생신고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는
내 추억의 간이역
삶이라든가 용접봉,불꽃,희망 따위
어린날 알지 못했던 말들
어느 담벼락 밑에 적고 있을 그애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당두마을,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맴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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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말썽쟁이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땜통 억만이는
곤지암 계곡에서 물을 많이 마시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중동에 밤 일을 나가야만 했던 수남 엄마는
만취해서 돌아온 어느 새벽녘
연탄가스를 잔뜩 마시고 누워있던
수남이를 영영 깨우지 못했다.
왼팔에 쇠갈고리를 달고 있던 호룡이 삼촌은
늘 호룡이를 때렸다.
비바람이 무척 불어 닥치던 어느 날
마당 한 가득 피가 흥건했던 그 날,
이후로 호룡이도 호룡이 삼촌도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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