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황규관
가자고 간 건 아니었지만
간 자리마다 허무 가득한 심연이다
떠나고자 떠난 건 아니었지만
두고 온 자리마다 가시덤불 무성한 통곡이다
지금껏 품은 뜻은 내 것이 아니었고
꾸었던 꿈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지나온 길 위에 남긴 흔적에
왜 가슴은 식을 줄 모르는가
멈추자 해도 가야 하고
머물자 해도 떠나야 하는데
왜 설렘이고 번민인가
바람이고 생명인가
......................................
푸른 하늘 빛과 물 빛이
맞닿은 곳
연초록빛 들판에
형형색색 들꽃이 번져
생과 사의 경계조차 모호한 곳
이름 모를 바람이 들판을 휘휘 돌아
푸른 물길로 눈 맞아 달아나고
여전히 군데 군데
풀 누운 자리
꽃 진 자리 남았다.
가슴 속의 푸르름은 변함이 없건만
눈뜨고 보니 나는 꽤 먼 곳까지 와 있다.
말로 풀기에도
글로 쓰기에도 너무
길고 긴 사연을 언제 다 얘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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