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베개


                           박성우


오지 않는 잠을 부르러 강가로 나가
물도 베개를 베고 잔다는 것을 안다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
오종종 모인 마을이 수놓아져 있다


낮에는 그저 강물이나 흘려보내는
심드렁한 마을이었다가
수묵을 치는 어둠이 번지면 기꺼이
뒤척이는 강물의 베개가 되어주는 마을,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
무너진 돌탑과 뿌리만 남은 당산나무와
새끼를 친 암소의 울음소리와
깜빡깜빡 잠을 놓치는 가로등과
물머리집 할머니의 불 꺼진 방이 있다


물이 새근새근 잠든 베갯머리에는
강물이 꾸는 꿈을 궁리하다 잠을 놓친 사내가
강가로 나가고 없는 빈집도 한 땀,


물의 베개에 수놓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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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싱그런 바람의 노랫소리.
언제나 그렇게 있었던 바람의 노래가 새롭게 들리는 아침은 분명 축복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축복이다.
늘 그렇게 있었음에도 알지 못했던 이유는
내 눈을 뜨지 못했고, 내 귀를 열지 못했고, 내 마음을 쓰지 못했던 것.
앎은 그렇게 온다.
눈을 떠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내가 마음을 써야 온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늘 그렇게 내 곁에 있었다. 그걸 알게 되는 기쁨은 꽤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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