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새벽바다의 향기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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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조선전쟁박물관 소장 사진들

 

31stInfantryRegimentStandard[1].jpg

 

1953년 7월 27일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날입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조인 55년을 맞아 북경 조선전쟁박물관이 소장하고있는 사진들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1950년 11월 27일 - 12월 1일 사흘간 장진호탈출작전이 전개되었읍니다.

온세상이 눈으로 덮혀있었고 그리고 계속해서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읍니다.  

칼날같은 바람과 강추위속에 장진호 동쪽 비탈길 4십리를 전투와 후퇴를 밤낮없이 계속하면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는데 미병력 3000명중에 1000명이 전사했읍니다.

그때 빼앗긴 미제31보병연대 깃발이 북경 조선전쟁박불관에 걸려있읍니다.

Yalu[1].jpg

1950년 10월 14일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는 장면

 

CCF1stCampaign1[1].jpg

1950년 10월 25일 - 11월 5일 전개된 일차 공세

중공군은 제38군, 39군 그리고 40군이 일차공세를 해 왔는데 각군은 3만명의 병력으로 되어 있읍니다.

거의 보병으로 짜여저 있으며 경험이 풍부한 군으로 총기 다루는 기술과 군순찰등 베테랑급입니다.

 

CCF124[1].jpg

1950년 10월 말 중공군 42군 제124사단 사령관 린치앙이 혜산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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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2일 일차공세때 후퇴하고 있는 미군병력을 앞질러가서 미군 장교를 생포하는 장면.

미 제2대대 B중대 장교.

 

prisoner[1].jpg

일차 공세에서 8기병연대소속 미군 생포장면.

중공군은 9mm Sten Mark2 기관총과 일제 6.5mm 38구경 장총을 들고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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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25일 계천(Gyechon)에서 적을 기다리는 중공군 39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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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25일 운산(Unsan)에서 한국군 6사단을 공격하는 중공군 40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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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1차 공세, 1950년 10월과 11월사이에 용산봉에 있던 한국군 1사단을 공격하는 장면.

고장(Kojang)에 있던 한국군6사단 7연대와 운산(Unsan)에 있던 15연대는 거의 전멸 되다싶이 했읍니다.

장비와 무기도 다 빼앗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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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공세에서 중공군 제4군이 청천강전투에서 소민봉을 공격하고있는 모습.

 

CCF39thCorps2[1].jpg

1950년 11월 중공군 제39군이 UN군 추럭 수십대를 파괴하고 공격하는 장면.

 

CCF79thDivChosin2[1].jpg

장진호에서 미32연대 1대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준비하고있는 모습

 

CCF79thDivChosin[1].jpg

장진호에서 중공군 80사단이 미군 32연대 1대대를 공격하고있는 장면.

 

CCFOccupyInnerPerimeter[1].jpg

중공군 80사단이 괴멸된 미1대대로 진격해 들어옵니다.

앞에 미군시체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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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에서 미제57야전포대대와 D중대 그리고 15대대가 버리고 간 장비들.

 

CCFPyongyang[1].jpg

1950년 12월 6일 제2차공세에서 평양에 입성하는중공군.

 

DeuceFourWarriors[1].jpg

중국 사진설명에 의하면 미제24흑인보병연대에서 생포된 포로라고합니다.

 

CCFCapturesSeoul[1].jpg

1951년 1월 4일 독립문을 통과하는 중공군.

 

CCFCrossesHan[1].jpg

1951년 1월 8일 한강을 넘는 중공군, 3차 공세

 

Hoengsong[1].jpg

1951년 2월 12일  횡성에서 한국군 8사단을 공격하는 중공군.

중공군3개사단과 북한군2개사단이 횡성지역에 있던 한국군 8사단과 3사단을 포위했읍니다.

포위망을 뚫고 원주로 후퇴하는데 병력손실이 극심했읍니다.

2월 11일-13일 사이에 사상자는

한국군 3사단   ---------- 1,238             장비손실  105mm 곡사포   ----   28

       5사단      ---     1,141                       155mm 곡사포   ----    6

       8사단      ---     7,465                        탱크    -------       6

미군   2사단      ---     1,769                        개인화기   ----    1,200               

       7사단                190

       187공수연대  --       59

   합계                  11,862

UndergroundA[1].jpg

벙커에 있는 중공군 7.62mm Ruchmoy Pulemyot 기관총

 

BCDPOW1[1].jpg

1951년 11월 영국군 포로들

 

CCFPiston[1].jpg

한국전에 참가한 중국 공군.

적기 1대를 추락시키고 3대를 파손시켰다고 합니다.

 

ccfA[1].jpg

1951년 4월 24일 제5차공세때

중공군 40군이 미24사단을 포위하는 모습. 

 

CCF5thCampaignMap[1].jpg

 

CCFStageFor5thCampaign[1].jpg

제5차공세때 진군하는 중공군.

 

CCFAssaultInstructions[1].jpg

캠퍼스에 쓰여저있는 글을 읽어주고있는 중공군 장교.

허리에 방망이 수류탄을 차고 있읍니다.

 

MultiTubeRockets[1].jpg

중공군 T34 대포를 산정상에 숨겨놓고 있읍니다.

 

KaesongTeaHouse[1].jpg

1953년 7월 개성 정전회담장에서 나오는 북한군과 중국군.

위의 사진들은 중공군측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출처 : 명당자리.
글쓴이 : 대물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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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954 년에는 어떻게 살았나?

Adam이 본 1954년 대

[꼭읽어보세요:1954년 대구, Photo by Adam Ewert,Ph.D.80 ]

1954년 대구...KOREA.....     Photo by Adam Ewert,Ph.D.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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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입수 정찬권(미국 유학생)...http://blog.naver.com/texasatm...2007.02.06
1주일 전에 와이프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미국교회의
Adam이란 할아버지 선생님의 저녁초대가 있었습니다.
한국인들만 초대하는 저녁식사 였습니다. 전에 한국에 가본적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방문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Adam의 나이 79세, 우리나라로 따지면 80 이었다는것에 잠시 놀랬습니다.
80세의 나이에도 volunteer로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한참이었던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서
2년간 교회의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한국에 왔었다고 하면서,
그당시 찍었던 귀한 한국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구를 들어가면서 찍은 대구의 표지판 입니다...
그당시에도 사과가 유명했군요....
백두산 가는길을 사랑하자라는 말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제가 대구는 15년전에 한번 가본적밖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가 어딘지는 대구 사람도 잘 모를듯 합니다..^^;
소시장의 풍경입니다....
Adam에게 인상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다...

Adam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중 하나인 한국 노인분들의 담배피는 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Adam의 집 한견에 Letter지 크기로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입니다.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입니다.


추수를 하는 들판의 모습입니다....
전쟁때문이었는지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어보이는 군요....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래 보이는 세 사진은 피난민촌의 사진 입니다.
바투 붙어있는 판자집들의 모습과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제의 모습입니다..

줄을서서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Adam의 기억하나는 그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은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공공 화덕에서 분유를 더운물에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사실 지금은 최소한 50대 중반 이상이 되었을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들입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한푸대의 Charcoal(숯?)을 이고 가는 모습입니다.

현재의 Adam과 아내 Alice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갔을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간 곳이라 합니다.
이후 몇나라를 더 돌아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은 위한 영어수업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몇장의 지금의 한국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더니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거라며 웃어주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1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만,
블로그 한페이지에 올릴수 있느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장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 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 입니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학생인 저로서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죠, 물론 50년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요....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써 있네요...
맞는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Jeep을 타고가다가 전복사고를 당한후
대구의 한 군병원에서 치료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했을때 눈빛이 강렬하군요...

원조물품에 대한 환영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된것 같은 사진입니다...
전쟁후의 모습들인데도 밝은 표정들입니다...(단월)도 아마 그 어디있었으리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고아가 아닌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군요....^^;

Outdoor Meeting이라고 써있는 사진입니다...
Adam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한 Adam과 아이들의 사진 입니다...
오른쪽의 양복아저씨 주윤발이랑 좀 비슷해보인다는 저만의 생각....ㅡㅡ;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가 이 대부분의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 입니다.
기종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Adam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좀 사는집 자제분들 같군요....
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피난민촌의 우유를 마시는 또다른 사진이군요....
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 집니다...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입니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그당시 보기 드물었을거 같은 직업여성이군요.....
교통정리 아가씨......멋지네요...^^;


Adam의 사진중 유일한 흑백사진인 김치독들의 사진입니다...
공동으로 사용한 장독대 같은데....
저당시에는 남의것 슬적 하는 일은 없었는지 궁금해 지는군요...

돼지팔러 장터로가는 한 아저씨의 사진입니다...

사진속의 아가씨는 Lois Khans이라고 하네요....
서양 자동차와 서양 아가씨의 모습에 동네아저씨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좀 민망한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네요....

대구에 있는 한 유치원 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군요....그래도 저기 계신분들은
그당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의 자제들이겠군요..

마을에 있는 공동 화로에서 분유를 타고 있는 사진 입니다...
저 뒤에 짝다리 처녀는 어른앞에서.....ㅡㅡ;

놀이터 사진 입니다......

소시장에서 소의 상태를 보시는 아저씨의 미소가 ...... 좋아보입니다...

소시장에서 만난 큰 모자를 쓴 아저씨가 Adam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또다른 소시장 사진의 담배대를 파는 상인입니다...

유치원 사진이라고 써 있네요....

분유를 데우고 있는 모습...

피난민촌에서 분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

피난민촌의 전체풍경...

분유 배급중입니다....

이 사진에는 부산이라고 써 있네요....어딘지는...

정확히 상표는 모르겠지만 빈 맥주켄을 사용하여 만든 지붕입니다...

전쟁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군용트럭을 이용해 구호 물품을 많이 날랐다고 합니다.
60트럭과 디자인은 같은데...
저도 군대시절 운전병이라 60몰았던 기억이...(제3야수교출신

대공용 기관총옆에서... 자세잡고 있는 군인 아저씨...^^

장터로 가는 길일까요?

5일장의 한 풍경입니다.

Adam에게는 우리나라의 지게가 많이 인상깊었나 봅니다....

갓에 도포를 두른 할아버니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어머니...

구호물품중 옷을 받기위해 모여있는 모습입니다.

평온해 보이는 농가의 풍경....

배추밭에서...

모내기를 하는건지 모종을 관리하고 있는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반바지를 입은 뒷모습을 봐선 우리나라 사람 같지는 않군요...

1954 대구에서 2007 Galveston 으로.. KOREA

2007/02/09 17:29
http://blog.naver.com/texasatm/150014344545

참 정신없던 지난 몇일 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던 한적한
제 블로그를 들어간 3일전 믿을수 없는 방문횟수에
네이버에 오류가 생겼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제 블로그가 올라간 것을 알게 되었고.....
첫날 2500명 이상의 사람들....
둘째날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 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낄수 있었던 말못할 감정을 어설픈
제 블로그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입니다.
수많은 방문과 댓글... 다행이 악플하나 없는
댓글과 Adam선생님에 대한 감사 인사,
사진을 올린 저에 대한 격려로 아내와 저는 많이 흐믓해 했습니다.
그 와중 대구의 매일신문과 대구KBS에서 연락이 왔고...
먼저 저에게 연락을 하신 매일신문의
사진부 안기자님에게 사진과 내용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참 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근대사 사진, 더군다나 컬러인 사진.....
맘 같아서는 1954년 이후 한국을 잘 모르시는
Adam선생님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었으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직 학생신분인 저의 입장이......ㅡㅡ;
한국사람의 방문이 많지 않은 이곳 Galveston에서
기회가 있으실 때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고,
한국의 발전을 보고 듣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할수 있었던건 몇장의 최근 한국 사진과
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짧은 홍보 영상물을
DVD에 녹화해 댁에서 보여드리는 것이 다였습니다.

매일신문사에서 온 감사편지를 프린트해서 보여드렸습니다.

이 공돌이가 리포터흉내를 내며 인터뷰 하는 사진 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서재에서 보여드리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아불싸...모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한페이지 보는데 10분 이상....ㅡㅡ;

서재의 한 벽면엔 이렇게 방문한 나라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30여 개국을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주로 1953부터 Galveston에 온 1967년 까지 전 세계를 다녀보신듯 합니다.

한국사진중 Adam선생님이 가장 좋아 하는 사진입니다.
어르신들이 쓴 갓이 말꼬리로 만들어진것도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날 인터뷰를 같이한 동네 한인들과 함께한 사진입니다.
다시한번 Adam과 Alice에게 감사 드립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이곳 시간 2월 8일 저녁8시에 이루어 졌습니다.
좀더 빠른 인터뷰를 시도 하려 했으나,
두분 모두 오늘도 8시까지 봉사활동이 있으시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욕심없으시고, 검소한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50년대 대구 모습 슬라이드 제공 아담씨 인터뷰
몇일전에 반기문 총장의 아프리카 방문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볼수 있었읍니다.
사진의 내용에 대해선 지금 잘 모르겠지만,
50년대의 이 사진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들 이었던것 같습니다.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하기 힘들지만,
자만하지말고 성실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공돌이다 보니까 화두를 던져놓고 마무리가 힘드네요...^^;
하여간 Adam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도깨비 뉴스에 기사화 되었네요.... 어쩐지 찾는이 뜸한 제 블로그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좀 놀랬다는....^^;
2007-02-07
http://www.dkbnews.com/bbs/zboard.php?id=headlinenews&no=7623

대구 매일 신문 (2007.2.9)에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online과 offline 동시에 기사화 되었습니다.
12일자 신문에 인터뷰내용과 사진이 더 기사화 될 예정 입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402&yy=2007

대구 매일신문 2월 12일자 신문에 인터뷰기사와 대구 사진 120장 모두를 볼수 있습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763&yy=2007

많은 대구분들이 사진에 대한 고증을 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그리고 지역발전에 힘쓰시는 매일신문도 많은 발전 있으시길 바랍니다.

Edit/Rimdaesik

출처 : 명당자리.
글쓴이 : 대물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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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정확히 70년 1~12월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입니다.

 

당시는 가난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힘겹게 살아오신 이분들은,

현재 50을 전 후 한 연세들이 되셨을겁니다.

 

누더기 옷에 헐벗고 굶주림에 살았어도

따스한 온정이 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영양 실조로 얼굴은 붓고

코에는 코물이 흐르고 손과 발은 동상에걸려 어렵게들 살아 오셨습니다.

울다가도 먹을 것 주면 뚝 그치고 하루세끼 먹는 집은

잘사는 집안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맨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 나는 젖내음과 따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투방집 : 나무로 얼기 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소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

물론 소 없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 나무 겁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 라는 지붕이지요.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위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최고의 놀이 기구였지요.

부모님들이 안계시면 몰래 끌고 나와서 온 동네 친구들 태우고,

때론 굴러서 많이들 다치고...

떨어진 바지 시린손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나마 도심에서는 만화방이 있어서 산골보다는 좋았지요.

만화방에서 책보는데 1원주면 6권정도...

 

 

 


 

생계를 위해 학교 다녀와서 껌팔이도 하고...

 

 

 


 

신문팔이, 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추수가 끝난 동구밖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최고였지요.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 중입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학교 다녀오면 의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돼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 카락 많이들 태웠었지요.

연필심 마저 품질이 좋지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바르고...

그야말로 주경야독, 형설지공이란 말이 땆 맞는 표현입니다.

 

 

 


 

암탉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 허리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  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근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 신고

신발이 꽁꽁 얼어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설겆이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않고

동네 우물가로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껑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겆이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 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 많이 굴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 껌팔이, 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다들 잘 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과 돌을 어깨에 맨 아이...

자주 돌에 찌어서 피멍이 드는 것은 다반사였지요.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표정이 너무도 진지합니다.

결의에 찬 모습이지 않습니까?

 

 

 

 

소먹이로 가고... 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애국심은 아마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겁니다.

 

 

 

 

 

초가집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있네요.

농번기에는 어른 한몫을 톡톡하개 해 냈지요.

 

 

 

 

한겨울 강아지를 않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

돌아가면서 안고, 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 때면 제인먼저 코풀어! 하시고...

따듯하게 물 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어머니의 손길은 추운 겨울에도 항상 따듯했습니다.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머큐롬)을 비취해두고

발라주시곤 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 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깍고 했지요.

부실한 기게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그나마도 이발비가 아까워서 항상 빡빡머리로 깍았지요.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이 사진은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학교인지 산속의 어느 이름모를 암자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 (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IT강국은 저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음악 시간이지요.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그러나 수업태도는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 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겆이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 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

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고적지를 찾아

대청소 및 관리도 하곤 했지요.

 

 

 

 

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

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뛰어 상대를 떨어트리나 껑충 껑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처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 하기.

무릅이 벗겨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뛰나 훨훨...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 껏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고...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 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차범근, 이회택과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했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치는 모습입니다.

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

특별 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

불량 식품이 너무많아 늘 배앓이하고...

 

 

 

 

당시 1원부터 제일 큰 돈 500원까지 입니다.

소풍갈때 어머니는 늘 5원을 주셨지요.

과자하고 눈깔사탕하고 사면 딱 맞는 돈인데

늘 콜라가 사먹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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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만리포 사랑
02. 럭키모닝
03. 내고향으로 마차는간다
04. 빈대떡 신사
 
05. 감격시대
06. 대지의 항구
07. 봄바람 님바람
08. 백마야 가자
 
09. 아리조나 카우보이
 10. 즐거운 목장
11. 청춘의 꿈
12. 하늘의 황금마차
13. 하이킹의 노래
 
14. 무정열차
15. 홍콩아가씨
16. 잘있거라 항구야
17. 왕서방 연서
 
 

 

 

 

   바믜제왕       To be continued ^^;

 가슴깊이 파고드는  그 짜릿한 맛..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

 (본인 창작외의 글,그림,사진,음악,이모티콘등은 인터넷상에서 구한것으로 편집한것입니다. 원문을 제공해 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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