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공광규


아내를 들어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두 마리 짐승이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고
또 한 마리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다


먹이를 구하다
지치고 병든 암사자를 업고
병원을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최근에 심하게 아프거나,
갑작스레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소식이 이어졌다.


가능하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건강하게...

제 명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기만이라도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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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공광규

         
새를 사랑하기 위하여
조롱에 가두지만
새는 하늘을 빼앗긴다 


꽃을 사랑하기 위하여
꺾어 화병에 꽂지만
꽃은 이내 시든다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 마음에 그물 쳤지만
그 그물 안에 내가 걸렸다 


사랑은 빼앗기기
시들기
투망 속에 갇히기.
....................................................

가둬놓고 사랑하려니까 힘이 들다.
소유하려 하니까 사랑이 쉽지 않은게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한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다.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 만큼 주었으니 하면서
상대에게 적어도 이 만큼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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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술병이 잔에다 술을 따르며 비어가듯,

원죄에 얽힌 인연으로 

어른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득,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봄 날,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는 아버지의 소리를 듣습니다.

 

어느 순간,

비우던 소주잔에서 인생의 쓴내가 물씬 풍길 때,

아버지,

당신의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한 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후두두둑...

빗소리 들이치는 홑겹 양철 지붕 아래에

깊은 밤 잠 못 이룬 채

세 아이를 줄줄이 눕혀 놓고

소주 한 병을 한 잔 한 잔 따라 비우며 

부스럭대던 그 소리가

 

지금.

꽃 비 날리는 저 창 밖 어딘가에서

허공을 맴돌아 자꾸만

자꾸만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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