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가에서 

 

                    김경미

 

눈과 함께 쏟아지는
저 송곳니들의 말을 잘 들어두거라 딸아
언 강밑을 흐르며
모진 바위 둥글리는 저 물살도
네 가슴 가장 여린 살결에
깊이 옮겨두거라
손발 없는 물고기들이
지느러미 하나로도
어떻게 길을 내는지
딸아 기다림은 이제 행복이 아니니
오지 않는 것은
가서 가져 와야 하고
빼앗긴 것들이 제 발로 돌아오는 법이란 없으니
네가 몸소 가지러 갈 때
이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란 없으리
.......................................................................

우리는 세가지 방법으로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 하나는 사색이다. 이것은 가장 고상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모방이다.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셋째는 경험이다. 이것은 가장 쓰라린 길이다.

 - 공자 -

엽서, 엽서

 

                         김경미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 년 혹은 이 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몇 자 적다 이 사랑 내 마음내로 찢어
처음 본 저 강에 버릴 테니까요
불쌍한 당신, 버림받는 것도 모르고 밥을 우물대고 있겠죠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 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누군가를 두고 있다는 것.


하지만 실상은 그 누군가를 진정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제대로 돌본 적이 없는 그 누군가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인지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 누군가가 명확히 누구인지 없는 경우도 많고,
어쩌면 그게 결국 제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명확한 대상으로 존재한다면
비록 마음만으로라도 마음 씀에 소홀하지 말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가슴은 아직 뛰고있는 것이 확실하니...


그렇지 못하다면...
아, 이 아까운 청춘을 어찌한다...

그해 봄에는


                      김경미


가슴마다 맺힌 산맥들 길을 주고
봄에는 푸른 땅으로 나서자
산과 들마다 걸려 넘어진 사랑 일으켜 안아
이 땅 끝까지 가랑비로 얼굴 맞대보자


봄엔 어딘들 못 나서랴
봄엔 뉜들 얼굴 맞대지 못하랴

..................................................

비가 온다.
분명 봄비다.


지난 주말, 눈처럼 벗꽃 잎 흩날리더니
어느새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싹 가득하다.


흐드러지게 핀 꽃잔치 구경도 못했는데,
이젠 한풀 꺾인 꽃마당
흩어진 꽃잎 쓸어담기에 더 바빠졌다.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려나 보다.


오늘은 비가 온다.
분명 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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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는 것일까


                                    김경미


1.
약속시간 삼십 분을 지나서 연락된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국화꽃잎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웃었다
불참한 이도, 더 와야 할 이도 없었다
식사와 담소가 달그락대고 마음들 더욱 당겨앉는데

문득 고개가 들린다 아무래도 누가 안 온 것 같다
잠깐씩 말 끊길 때마다 꼭 와야 할 사람 안 온 듯
출입문을 본다 나만이 아니다 다들 한 번씩 아무래도
누가 덜 온 것 같아 다 모인 친형제들 같은 데 왜
자꾸 누군가가 빠진 것 같지? 한 번씩들 말하며

두 시간쯤 지났다 여전히 제비꽃들 처럼 즐거운데
웃다가 또 문득 입들을 다문다 아무래도 누가 먼저
일어나 간 것 같아 꼭 있어야 할 누가 서운케도 먼저
가버려 맥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자꾸 둘러본다


2
누굴까 누가 사는 것일까 늘 안 오고 있다가 먼저 간
빈자리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저 기척은 기척뿐
아무리 해도 볼 수 없는 그들에겐 또 기척뿐일까 우리도
생은 그렇게 접시의 빠진 이 아무리 다 모여도
상실의 기척 더 큰 생은

.....................................................................................

연초가 되고 보니, 또 이런 저런 계획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찾아낸 영수증 몇 장과
이제는 책장 구석 한 켠으로 가게 될 다이어리에
띄엄띄엄 적힌 글씨들이 눈에 띈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연말 모임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무사한 얼굴 한 번씩은 봤구나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유난히 이별이 많았던 2009년을 이제 접는다.
그리곤 새 다이어리에 가족들과 모임 친구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그래, 올 때는 이렇게 순서가 있었는데...
그래도 언제 태어났는지는 다 알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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