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오늘처럼 흐리고 비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시입니다.

우리 민초들의 삶은 언제나 이렇게 고단합니다.
누워서, 울다가, 잠들고,
또 누구보다 먼저 다시 일어나고, 웃고,
다시 눕고...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쳤을 때,

이 어둠속에 누군가 내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바람속에 든든히 두 손 맞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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