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리를 걸어서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로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와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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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풍성한 한가위 명절,
꽤 오래 전,
한적한 산골 마을의 추석 풍경이
하늘거리는 한지 한 장에 옮겨지듯
소로시 보얗게 번지며 펼쳐진다.

이십리를 걸어서 장에 나가 추석을 차릴 제수를 준비하는 

정성스런 마음도 전해진다.


아직 덜 저문 하늘에 구름이 한가한 걸 보니,
오늘은 둥그런 달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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