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하여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다소 외지고
좁다란 길이라도 괜찮다.
내게 남은 길이
번잡스럽거나
소란스럽지 않았으면...
단 하루를 살아도

서시

 

               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줄의 글이

더 가슴 깊이 박힐 때가 있다.

 

멋진 촌철살인의 시(詩)이다.

시란 이래야하는 것처럼,

시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좀 엉뚱하지만 누군가 이 시에 덧글을 달았다.

'내 몸은 흠집이 많다.

 너무 마을과 가깝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내 몸이 여전히 성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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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천재시인 윤동주 님의 시 입니다.


주옥같은 한마디 한마디의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골목한 모퉁이에서 인생을 만나고 사랑을 만나고

영혼을 만나고 별을 만납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도 생각에 잠깁니다...


맑은 영혼의 노래를 듣습니다...
두고 두고 내 귓전을 맴돌아
영원히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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