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꽃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

몇 달째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더는 버티지 못한 이곳 저곳에서 가뭄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실, 어리석은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의 고마움을 늘상 잊고 산다.
물도 그러하고, 공기도 그러하며, 햇빛도 그러하고, 음식도 그러하다.
만약 이것들이 없다면 불과 며칠도 버티지 못할 게 뻔한데...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랑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없다.
세상 만물이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필요없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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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창밖에 무엇인가 반짝거리면서 흩뿌린다.
가만히 보니 눈이 온다.
눈이 온다고 하기보다는
은빛 가루가 뿌려진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


한 해가 겨우 닷새 남고 보니,
지난 일이며, 얼굴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랜만에라도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저 눈가루마냥 반가울 듯한데...
목소리도, 어찌 사는 지도 궁금하긴 한데,
새삼스럽게 연락을 하자니 다소 부담스럽다.


조용히 한 해를 접어두자니,
자꾸만 자꾸만 궁금 주머니가 뒤집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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