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이동호
 

그는 나무다. 상록수다. 그의 입은 가지이고
그의 언어는 푸른 잎이다.
그가 나이테에 가둔 말을 풀어낸다.
그는 가지 가득 말을 올려놓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잎사귀를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푸른 빛이 시끄러울 뿐이다.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잎을 오물거린다.
잎이 점점 深綠色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 증거.
그가 역방향으로 자신의 가지를 흔든다.
사람들은 멀찌감치 멀어져서 곁눈질이다
사람들도 나무다. 단풍나무다.
방언이 깊어 사람들은 늘 가을이다.
불필요한 상징을 없애고 나면
늘 그와의 앙상한 거리를 드러낸다.
그와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삶이다.
그러나 그는 아픈 나무다.
자신의 말에 늘 찔리는 상록 침엽수다.
오늘도 대문 밖에서 그가 푸른 잎을 떨군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다
.........................................................

별 것없는 삶에 쓸데없는 고민이 덕지덕지 많이도 매달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들러붙은 헛걱정들...
떼어내려해도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내 삶이 고단한 건지,
내가 고단하게 생겨먹은 건지...
타다 남은 장작 더미에서 연기 피어오르듯
또 다시 잡생각이 폴폴 피어오른다.


생각에 큼지막한 브레이크가 하나 달려있으면 좋겠다.
성질대로 꾹꾹 밟아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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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미콘 트럭

                                               이동호


아버지는 신이셨다 트럭에 지구를 올려놓고 자주 출타 중이셨다.
지구는 짐칸에서 저 홀로 빙빙 돌아가고,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녁 무렵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작업복은 은하수에 젖어 반짝이고,
뉴스에서 열대야가 자주 거론될 때에는, 북극의 빙하를 까만 비닐 봉지에 가득 담아오기도 하셨다.
얼음과자를 먹고 있는 우리 머리를 아버지의 손바닥이 쓰다듬을 때마다
후드득 우리의 발등으로 별들이 떨어지곤 했다.


우리는 자갈이거나 모래였다. 아버지는 몇 포대의 시멘트와 물만으로 우리를 견고하게 만드셨다.
형은 한 가정의 든든한 바닥이 되었고, 나는 한 가정의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지구를 물려주시고 산 속으로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마음에 신전을 세웠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렸다.


두어 개의 쇠못과, 나사못 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아버지의 무덤을 방문하곤 할 때에는,
가끔, 손바닥으로 다 큰 우리 등을 쾅쾅 두드려주신 것처럼 하늘에는 천둥이 치고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곤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를 구부렸다 펴곤 했다.


아이들도 이제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날에는 일찍 퇴근하여 나는 내 자식들에게 신화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태초에 아버지의 트럭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멘트로 이 세상을 지으셨다.
그 속에서 우리들을 살게 하셨다.


세상 밖에는 아버지의 트럭이 정차해있고, 지구는 그 트럭 위에서
빙빙 돌고 있다.

.........................................................


오늘도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랐다.
자정무렵, 나는 집을 향해가고 있다.


무거운 머리를 벽에 기대고 천장을 바라 본다.
나는 내일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집을 나서서
지하철 한 구석자리에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주변의 저들이 그러하듯이.


이런 우리의 일상이 즐겁고 유쾌하며
활기 넘치고 희망적이기를 기도해 본다.


우리의 삶은 그러하다.
아버지, 당신의 삶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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