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흙

 

                        조은


잠시 앉았다 온 곳에서
씨앗들이 묻어 왔다


씨앗들이 내 몸으로 흐르는
물길을 알았는지 떨어지지 않는다
씨앗들이 물이 순환되는 곳에서 풍기는
흙내를 맡으며 발아되는지
잉태의 기억도 생산의 기억도 없는
내 몸이 낯설다


언젠가 내게도
뿌리내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 뿌리에서 꽃을 보려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는 그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내 고통은 그곳에서
샘물처럼 올라온다


씨앗을 달고 그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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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초행(初行)길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래서 헤매는 것이 당연한,


물어서 가고

때론 돌아가야만 하는,
그러다 지치면 잠시 쉬어가는,
낯설기만 한
초행(初行)길


누군가 옆에 있으면 그것으로 든든한,
함께 갈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초행(初行)길

꽃이 지는 길


                     조은


길을 가려면 꽃길로 가라
꽃길 중에서도
꽃이  지고 있는 길로 가라
움켜잡았던 욕망의 가지를 놓아버린 손처럼
홀가분한 꽃들이 바람의 길을 가는
그 길로 가라


꽃들의 그늘지고 어두운 곳까지 나풀나풀 다가가고
꽃이 진 자리는
어느 순간 당신 삶의 의미를 바꾸리라
그러면 오랜 굴레에서 풀린 듯
삶이 가볍고 경쾌하리라
 

그 길로 가다 보면
수밀도에 흠뻑 취할 날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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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가분한 꽃들이 바람의 길을 가는 그 길... >

-> 꽃이 지는 길...


한 자, 한 자, 한 낱말, 한 낱말을 찾아,
무수히 오갔을 그 길 위에서
이 한 줄의 시를 만났더란다.


한평생 글 짓는 시인(詩人)으로 산다는 것,
그 세월의 두께를 우리 범인(凡人)이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다 그렇다고 손치더라도
어찌 저리도 가볍고 경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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