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김선우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랫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로 지나 
깊은 계곡을 핥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 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세상이 처음 있을 적 신께서 관계하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내 허벅지 위의 햇살처럼
알몸이었음을 알겠다 무성한 억새 줄기를 헤치며
민둥한 등뼈를 따라 알몸의 그대가 나부껴 온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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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각적인 시어를 따라잡으려면
늘 한 번씩 다시 되새김질 해 곱씹어야 한다.
한 번 훑고 지나가서는 아랫도리만 부풀어 오를 뿐
그 감각을 제대로 깨우지 못한다.

 

한 번은 시작이라서 짧고 강하게...
두 번째 쯤에 제대로 힘을 써 볼 요량이라면
한마디 한마디 끊어보아야 한다.

서서히, 찬찬히, 세심히, 가만히 가만히 살펴야 한다.

 

오늘 그녀를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마주해 봐야겠다...

 

잠시 덮은 눈거풀 위에 민둥산 새하얗게 펼쳐진 억새밭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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