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한국전 30편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원문을 따랐음.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시리즈로 #1 에서 #30까지 연재로 작성한 것을 한 화면에 올렸습니다.  특히 6.25를 겪은 6학년세대들에게는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함 그대로 입니다. 이 자료는 "Oh My News" 에 박도(Park Do)기자가 올린 글 소개입니다.(註:再具成)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 전투 후 주간 취침.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 1950. 8. 2. 금강철교

▲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 1951. 1. 5. 1.4 후퇴 피난 행열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

▲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


▲ 1950. 8. 15. 피난민 행렬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
▲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
▲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


▲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

▲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

▲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

▲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
▲ 1950. 10. 1. 소공동 일대
▲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
▲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

 

휴전회담

 

▲ 1951. 7. 8. 개성, 임시 정전회담 장소였던 한 한옥. 이 장소는 그해 10월 24일까지 사용되다가 유엔군 측 요구로 10월 26일부터 판문점으로 옮겨졌다.

▲ 1951. 7. 8. 개성, 정전회담으로 가는 북한 측 대표와 통역관 리차드 언더우드(Richard Underwood).

▲ 1951. 7. 8. 개성, 헬기에서 내린 유엔군 측 정전회담 실무자를 맞이하는 북측 실무자들.

▲ 1951. 7. 8. 정전회담을 위한 유엔군 측과 북측의 첫 만남.

▲ 1951. 7. 10. 개성 정전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유엔군 측 대표.

▲ 1951. 7. 15. 개성, 정전회담에 열띤 취재를 벌이는 기자단.

▲ 1951. 7. 18. 북측이 제공한 유엔군 측 대표 휴게소.

▲ 정전회담장에 나타난 북측 대표. 왼쪽 두 사람 중공군 대표, 가운데 남일 대장, 다음 이상조 소장.

▲ 1951. 7. 27. 문산, 정전회담 유엔군 측 한국인 옵서버들(왼쪽부터 변영태, 손원일, 김정렬, 유재홍, 백선엽)


▲ 1951. 7. 11. 서울, 서울시민들이 덕수궁에서 정전회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1951. 7. 18. 개성, 정전회담장 밖에서 유엔군 측 기자와 중공군 통역관이 담소하고 있다.

▲ 1952. 12. 4.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에 앞서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뒤에 탄 사람이 클라크 주한 유엔사령관.

▲ 1953. 4. 11. 판문점 정전회담 연락장교회의에서 부상병 포로 교환 합의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있다.

▲ 1953. 5. 8. 정전회담 북한 측 남일 대표가 회담장을 떠나고 있다.

▲ 1953. 6. 11. 부산, 학생들이 정전회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1953. 7. 26.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전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1953. 7. 28. 개성, 중공군 총사령관이 정전 협정 조인에 서명하고 있다.

▲ 1953. 7. 29. 미 해병대 병사들이 정전협정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 1951. 11. 27. 판문점 정전회담장에서 북한 측 장춘산 대표와 유엔군 측 머레이 대표가 지도를 펴고 휴전선 획정을 협의하고 있다.

 


 

 

출처 : 용촉고을
글쓴이 : 가을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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