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땅은 조금씩 늙어간다
이영유
하늘은 맑고 빨래는 깨끗했다
격에 맞게
서두르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모나지 않았으며
지붕은 고요해...
창문은 생각들로 늘 어지러워
불을 켜자
어둠으로부터 한 생각쯤 뒤로 물러나
예사롭지 않은 소리
들린다
같이 있는 모든 것들 실은
언제나 저 혼자
웃음 소리 크고 작게
밤바람으로 휘몰려 다녀
어디선가 또 비명
울음 음울 울음
어느 세상 한 귀퉁이 다시 무너져내리는가?
지붕은 늘 그대로
모양도 늘 그대로
생각은 살아온 길만 추억하고
땅은 조금 조금씩
늙어간다
.........................................................
생각의 끝을 보려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 생각이 불쑥 찾아와 날이 새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사는지...
끝이 없을 것같은 질문과
답을 찾을 수 없을 것같은 허허로움이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새게 했다.
어느새 창밖에 희미한 밝음이 번진다.
생은 한 번의 죽음만을 허가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단 일초도 더 허락하지 않는다.
그 유한성을 깨닫는 게 먼저였다
하늘에 띄운 연 실이 풀려나가듯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에 주루룩 풀려나갔다.
생각이 멈추는 순간,
뒤통수에서부터 눈두덩으로
뜨끈한 피로가 천천히 밀려온다.
단 일초도 뜬 눈을 더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명시 감상 5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0) | 2013.06.12 |
---|---|
오인태... 난감한 사랑 (0) | 2013.06.07 |
박이도... 찔레꽃 이야기 (0) | 2013.06.04 |
문태준... 하늘궁전 (0) | 2013.06.03 |
유재영... 공일오비 (空一烏飛) (0) | 201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