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땅은 조금씩 늙어간다


                                                   이영유


하늘은 맑고 빨래는 깨끗했다


격에 맞게
서두르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모나지 않았으며
지붕은 고요해...


창문은 생각들로 늘 어지러워


불을 켜자
어둠으로부터 한 생각쯤 뒤로 물러나
예사롭지 않은 소리
들린다
같이 있는 모든 것들 실은
언제나 저 혼자


웃음 소리 크고 작게
밤바람으로 휘몰려 다녀
어디선가 또 비명
울음 음울 울음


어느 세상 한 귀퉁이 다시 무너져내리는가?


지붕은 늘 그대로
모양도 늘 그대로
생각은 살아온 길만 추억하고


땅은 조금 조금씩
늙어간다
.........................................................

생각의 끝을 보려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 생각이 불쑥 찾아와 날이 새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사는지...
끝이 없을 것같은 질문과
답을 찾을 수 없을 것같은 허허로움이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새게 했다.


어느새 창밖에 희미한 밝음이 번진다.
생은 한 번의 죽음만을 허가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단 일초도 더 허락하지 않는다.
그 유한성을 깨닫는 게 먼저였다


하늘에 띄운 연 실이 풀려나가듯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에 주루룩 풀려나갔다.


생각이 멈추는 순간,
뒤통수에서부터 눈두덩으로
뜨끈한 피로가 천천히 밀려온다.
단 일초도 뜬 눈을 더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