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이병률

 

샀는지 얻었는지
남루한 사내가 도시락을 들고는
공원 의자 한쪽에 올려놓더니
가까이 있는 휴지통을 뒤져 신문지를 꺼낸 다음
한 치의 망설임없이 도시락을 엎는다
다시 음식을 담은 신문지를 잘 접어 보퉁이에 챙긴다
행복을 바라지 않겠다는 것일까


빨래를 개고 있는지
옷감을 만지고 있는지
그녀는 옷을 쥐고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는 것 같았다
만지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파르르 온몸을 떨더니 바늘로 생손가락을 찌른다
행복을 꿰매겠다는 것일까

 
어느 날 길이 나오듯 사랑이 왔다
사랑은 어떤 사랑이 떠날 때와는 다르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왔다
허나 저울은 사랑을 받치지 못했다
무엇이 뼈고 무엇이 살인지를 모르는 극지로 흘러갔다
상자를 받고도 열지 못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절벽에다 힘껏 던졌다
행복을 공중에 매달겠다는 것이었을까
..................................................................

행복은 과거의 어느 모퉁이부터
지금 여기까지 곳곳에 널려 있겠지.
기억 속에 남겨진 것도 있고
영영 잊혀진 것도 있겠지.


종종 그 추억거리가 행복인 건 맞지.
행복을 바란다고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지.


하지만 행복은 철저히 주문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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