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


                     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

한 잎 흔드는 바람결처럼
그렇게 생각이 오지.


뜨거웠던 여름 내내
예비된 시간에 대한 사유,


한 잎이 떨어지는 순간,
경이로운 증거가 되지.


길바닥에 흩어진 낙엽을 쓸어 모아
태우는 소릿결처럼 사르락 사르락 오지.


깨달음...

'명시 감상 5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0) 2013.11.07
강경화... 멍하니 멎다   (0) 2013.11.04
김용택... 들국화  (0) 2013.10.31
고미경... 회색동화  (0) 2013.10.23
박철... 들길과 관절염  (0) 2013.10.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