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


                               이동순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우수수 몰려다녔습니다
그대에게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갑니다
이런 날 저녁에 그대는 무얼 하고 계신지요
혹시 자기 자신을 잃고 바람 찬 거리를 터벅터벅
지향 없이 걸어가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이 며칠 사이 유난히 수척해진 그대가 걱정스럽습니다
스산한 가을 저녁이 아무리 쓸쓸해도
이런 스산함쯤이야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
그대를 믿습니다 그대의 꿋꿋함을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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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비바람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다.
드르르르륵...
문을 여니 물비릿내가 물씬 풍기고
새벽 찬바람이 소매깃을 시리게 파고 들더니
잠이 덜 깬 등짝을 선득하게 긁는다.


어제 종일토록 쓸어모았던 낙엽이며 검불이
사방에 흩어져 마당이 온통 난장판이 되다.


젖은 낙엽을 쓸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데...
어제 늦은 어스름에라도 말끔히 태워버렸어야 했는데...
드르르르륵...
후회를 닫고 더듬더듬 이불을 끌어다 덮는다.


빗줄기가 서걱서걱 내린다.
이제 겨울이 아주 바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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