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北魚)


                          김종길


퇴근길 무던히 지쳐
버스에서 내려서 접어든 골목,


과일가게며 채소가게며 생선가게 앞
길바닥에 앉아 순대나 콩나물을 파는 아주머니들,
손수레를 세워놓고 강냉이를 튀기거나 솜사탕을 말아내는 아저씨들.


벌어먹고 사는 길도 가지가지―
나는 교실에서 손에는 책과 백묵을 들고,
입으로는 연신 지껄여대며, 때로는 유식한 서양말도 섞어가며,


별것도 아닌 물건을 자랑하며 외쳐대는
저 넉살좋은 장사꾼처럼 신나게 떠드는 것으로
월급도 받고 상여도 받고 곧잘 살아가고 있다.


노동력도 상품이라면
나 자신이 바로 상품이 아닌가!
정년을 코앞에 두었으니, 그것도 폐품 직전의 상품.


저 생선가게가 팔다 남긴,
꽂이에 꿰인 비쩍마른 북어.
그 감지도 못한 흐릿한 눈깔에 얼비친


겨울 하늘,
찬바람 이는
해질녘 겨울 하늘.
.............................................................

가끔 일상이 지겹다. 별 것 아닌 하루...
하지만 그 하루가 실상은 기적임을 알 게 되는 순간이 간혹 있다.


오늘 비참한 한 사람의 죽음을 보고서야
보잘 것 없는 내 하루에 감사하고
다른 이의 뼈아픈 고통을 술자리 내내 듣고서야
이제까지의 내 고민이 별 것 아니었음을 안다.


며칠 간의 어리석은 고민을 한 잔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입김마저 서걱거리는 밤거리를 나서다

양 팔을 들어 올려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둥글둥글 풀어 본다.


까짓거... 사는 거 별 것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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