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백석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다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롱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엔느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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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력 : 오금, 무릎의 구부리는 안 쪽.
디운귀신 : 지운귀신, 땅의 운수를 맡아본다는 민간의 속신.
조앙님 : 조왕님, 부엌을 맡은 신, 부엌에 있으며 모든 길흉을 판단함.
데석님 : 제석신, 무당이 받드는 가신제의 대상인 열두 신, 한 집안 사람들의 수명, 곡물, 의류, 화복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다 함.
굴통 : 굴뚝.
굴대장군 : 굴때장군, 키가 크고 몸이 남달리 굵은 사람. 살빛이 검거나 옷이 시퍼렇게 된 사람.
얼혼이 나서 : 정신이 나가 멍해져서.
곱새녕 : 초가의 용마루나 토담 위를 덮는 짚으로, 지네 모양으로 엮은 이엉.
털능귀신 : 철륜대감. 대추나무에 있다는 귀신.
연자간 ; 연자맷간. 연자매를 차려 놓고 곡식을 찧거나 빻는 큰 매가 있는 장소.
연자당귀신 : 연자간을 맡아 다스리는 신.
회리서리 : 마음 놓고 팔과 다리를 휘젓듯이 흔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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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지나고는 감기의 위세가 대단하다.
젊은 년 하나 자빠뜨려 온종일 방구석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더니만
젊은 녀석도 마저 하나 자빠뜨려 방바닥을 설설 기게했다.
간신히 사무실이라고 기어나와 일 하겠다고 쭈그리고 앉은 년놈들조차
골골대고 비실거리긴 매한가지다.
어쩌면 인간은 이 바이러스로 멸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목이 자라모가지마냥 쏙 기어들어가고
목구멍에선 괜한 헛기침이 자꾸 올라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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