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절반
이병률
한 사람을 잊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이 사는 데 육십 년이 걸린다 치면
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
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과
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
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
한 며칠 꽃망울을 맺다가 죽는 걸 보면
앞으로 한 삼십 년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데
꼬박 삼십 년이 걸린 셈
이러저러 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일진대
남은 삽십 년 그 세월 동안
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
싹 틔우지도 꽃망울을 맺지도 못하고
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
한 사람을 만나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을 잊는 데 삽십 년이 걸린다 치면
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일 터
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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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탑쌓기 놀이를 해도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
도미노를 세우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
넘어뜨리는 것은 순식간.
말끔히 닦고 깨끗이 치우는 것은 수고롭지만
더러워지는 것은 잠깐.
그렇다고 대충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중하고 귀한 삶인데.
무엇이든 기꺼이 행할 일이다.
기꺼이는 기적을 만드는 주문이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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