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이동호
아내가 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려 한다
아내의 완력에 빨래처럼 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소불위한 잔소리의 권능에 못 이겨
끝내 구겨져 세탁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세탁기 속에도 사계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세탁기가 지구처럼 자전한다
몸이 바닥의 회전 날을 축으로 공전하는 동안
내 몸통 속에서 아름답게 꽃이 피고 지고
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물거품이 해조처럼 밀려들 적마다
내 속으로 신호가 밀려와서 자라고
머리에서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울리곤 했다
내 몸의 각질이 낙엽처럼 내 주변을 떠돌았다
시베리아 벌판을 고사목처럼 걸어다니기도 했다
아내가 원하는 내 부활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젖은 아내의 명상 속을
섬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곧 탈수될 것이다
햇볕 소용돌이치는 어느 베란다에서
말 잘 듣는 강아지풀처럼 뽀송뽀송
잘 건조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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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짧지 않은 30여년을 따로 산 남남이
하나의 뿌리로 얽혀 산다는 것이 어찌 수월할까?
뿌리 내리기도
꽃 피우기도
열매 맺기도
낙엽 떨구기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겠지.
한 순간도 애쓰지 않고 되는 것이 있었던가?
서로 제 욕심 좀 버리고 양보하고
서로를 위해 좀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야겠지.
혼자 나서, 혼자 가는 인생
반평생 그렇게 어울려 살다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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