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

 
                 이화은
 

파도의 첫 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어머니의 언문 편지처럼
띄어쓰기도 없이
가득가득 갈매기 날아올라
문장은 길어지는데
질문은 자꾸 늘어나는데
바다는 벌써 나를 덮으신다
단숨에
다 읽혀버린 내 삶이
너무 가벼웠다고
한순간
................................................................................

어제는 밤 늦게까지 뭐라도 곧 한바탕 쏟을 기세로
무겁게 무겁게 내려앉은 하루


날이 저물도록 끼니도 못 챙겨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저녁끼니 보다 잠을 먼저 청한다.


바닥에 널브러진 낙지마냥 방바닥에 퍼져 늘어져 있다가
이런게 사는 건가 싶으니
저절로 눈 감기는 것도 다 서럽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르디 푸른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밤새 흘린 눈물은 흔적도 없다.


아, 아주 가끔은
가볍디 가벼운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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