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병이 깊으면


                              박남준


먼산은 언제나 길 밖의 발길로 떠돌았으므로 상여처럼 돌아가는 길가,
등뼈 깊이 봄날이 사무쳐서 어지러운데, 두 눈에 장막은 일어 몸,
휘청이는데 얼마 만인가 마당 가득 풀들은 어느새 저토록 자라났는지,
나 먼 길 떠나고 사람 손길 닿지 않으면 이내 저 풀들,
어두운 내 방 방구들에도 솟아나겠지.


풀을 뽑는다.
한 포기의 풀을 뽑는 일도 마음대로 쉽지 않아서
모질게 다져먹지 않고는 손댈 수 없다.
쇠별꽃 봄맞이꽃 꽃마리 개미자리, 서럽다. 곷들이 피어난 것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것은 조금 크고
어떤 것은, 보기에도 안쓰러우리만큼 작고 깨알 같지만
어느 것 하나 눈물나지 않은 것 없어 이 짓이 뭐람, 이 짓이 뭐야,
한 움큼 뽑았던 풀들 놓아 버리고
주저앉아 마음 처연한데, 앞숲인지 들려오는 너 두견,
울부짖느냐 무너져내리는 새소리.
..................................................................

환갑이 다 지나고, 큰 병을 겨우 이겨내고서야
오늘 하루의 감사함을 알았다는 한 여인의 강연.


열심히만 살아 왔던 여인,
삶의 시련 앞에 늘 그녀는 원망하고 분노했단다.
하지만 어느 날 뜻밖에 암이 걸려
수술도 치료도 어렵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차라리 목숨을 끊으려 절벽으로 뛰어내렸건만
나뭇가지에 발목이 걸려 살았단다.


그 딸을 구한 당신의 어미가
'내가 오래 살아 이런 고통을 딸이 겪게 됐다'고
그 날로 곡기를 끊고 하릴없이 세상을 등지셨단다.
그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남겨진 딸은 한없이 한없이 운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중하다'고 한마디 남기고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신 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고통과 시련을 다 이겨내고 다시 새 삶을 얻어 살고 있다는 여인.


지난 얘기를 하는 중에 북받치는 설움을 참아 넘기는 게 힘겨워 보였다
아직 설움이 다 가시지 않고 가슴에 남았던가?


오늘 하루 얼마나 소중한가?
이름 값, 나이 값, 제 값을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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