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다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선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 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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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빗방울 냄새가 물쿤하게 피어오른다.
비가 오니 괜시리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진다.


세상 사는 일은 어쩌면 제 마음을 닦아 내는 일.
소복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야 하고,
어질러진 주변도 정리해야 하고,
어수선해진 마음도 추스려야 하니,
마음만 바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몸을 먼저 움직일 일이다.
평소에 주변 정리정돈을 열심히 하고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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