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

생때같은 자식을 바다에 묻고
40여일을 굶다가 쓰러진
한 아비의 맥없는 눈물을 보고 있으려니
무기력하기만한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명시 감상 6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도현... 그대를 위하여   (0) 2014.09.02
오세영... 바닷가에서   (0) 2014.08.25
홍정순... 철물점 여자  (0) 2014.08.22
주요한... 빗소리  (0) 2014.08.22
김진경... 시간 위의 집   (0) 2014.07.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