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물점 여자

                        홍정순


예외 없다 사람 손 가야 비로소
제값 하는 무수한 연장들 틈새에서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못 팔아야 살지만
못 팔아도 사는 여자
십 년 전 마음에 심은
작심(作心)이라는 볼트 하나
한 바퀴 더 조여야 하는
사월은 성수기
작업 현장에 연장이 필요하듯
여자에겐 시간이 절실하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고요 속 새벽이 받아들인다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흙집을 개조한 철물점 기와지붕엔
아직도 이끼가 끼어 있어
늘 기역자로 만나야 하는 새 소리는
어긋나 포개진 기왓장 틈새에
알 낳고 품었을 시간들
지난 십 년을 생각나게 하는데
용마루 위 일가(一家) 이룬
새들의 울음소리에
자꾸만 착해지는 여자
지명 따라 지은 이름 '대강철물점'
간판 너머엔
적당히 보리밭 흔드는 바람이 불고
멋대로 떨어지는 감꽃도 싱싱하지만
개줄 하나 팔고 앉으면
받침 하나 빠지고
물통 하나 팔고 앉으면
단어 하나 달아난다
오늘도
철물처럼 무거운 시
플라스틱 약수통처럼 가볍고 싶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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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 섶을 잘 매조지하는 일.
일상의 매 순간에 최선을 다 한다는 거창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은 삶의 단계 마다 잘 매듭을 짓고
순간 순간 완성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면
그때마다 단추를 딱! 잘 채워서
우선 제 꼴을 단정히 잡아놓을 일이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삶의 몇 안 되는 답을 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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