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김영랑
가을날 땅거미 아름픗한 흐름 우를
고요히 실리우다 훤뜻 스러지는 것
잊은 봄 보랏빛의 낡은 내음이뇨
임으 사라진 천리 밖의 산울림
오랜 세월 시닷긴 으스름한 파스텔
애닯은 듯한
좀 서러운 듯한
오! 모두 못 돌아오는
먼― 지난날의 놓친 마음
....................................................
그리움 조각 하나 남아있지 않은
가을 하늘의 푸르름은
낙엽 수북이 쌓인 공원 벤치에서
아무 말없이 네가 전한
마지막 이별 편지만큼 시리다.
반듯하게 딱 반 접힌 흰 편지지가 전한
날카로운 가슴 시림과 가녀린 떨림이
아스라히 멀어져만 가는 푸른 가을 하늘 어디엔가 남아있기를...
아, 자꾸만 자꾸만 흐려지던,
무어라 적혀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
편지지에 빼곡하던 글자들이 오늘은 왜 이리 그리운가?
오늘 하늘은 또 왜 이리 푸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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