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募)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天古)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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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絶頂)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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