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공허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고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갈 것이다.


잠시도 멈춰있지 않을 것이다.
계속 가고 있을 것이다.


기다림은
그 자리에 멈춰 서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그리고 공간을
지켜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Someday, We'll live together... Someday...
멀리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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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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