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송수권
어느날 세상은 비에 얼룩지고
내 마음 서러운 날은 풀밭을 찾아갔다
뿌옇게 흐르는 안개비를 옷소매로 닦으며
짓무른 황토흙을 지쳐 나가 풀밭을 걸었다
구둣발 밑에서 깨어지는 풀들의 비명,
어떤 풀꽃들은 안개속에서 팔굽이를 들어 필사적으로 얼굴을 닦고 있었다
무심히 고개를 돌렸을 때 등뒤로 거대하게 찍혀진 발자국들
황토흙 발자국들, 흐르는 옷소매로 나도 몇 번이나 얼굴을 지웠다
풀들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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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이 쓸고 간 자리
군데군데 들 풀이 드러눕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며 잎사귀며
아직 덜 자란 열매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마음마저 어수선하다.
큰 바람이 지나간 자리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깊어
어디든 훌쩍 떠나기를 재촉하고
마음 둘 곳 없던 나는
자꾸만
큰 바람이 지나간 자리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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