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


               문태준


나무그늘과 나무그늘
비탈과 비탈
옥수수밭과 옥수수밭
사이를
뛰는 비
너럭바위와 흐르는 시내
두 갈래의 갈림길
그 사이
하얀 얼굴 위에
뿌리는 비
열꽃처럼 돋아오는 비
이쪽
저편에
아픈 혼의 흙냄새
아픈 혼의 풀냄새


소낙비 젖어 후줄근한 고양이 어슬렁대며 산에 가네
이불 들고 다니는 행려처럼 여름 낮은 가네
...................................................................................


벼르고 벼르던 소낙비가 악다구니쓰듯 쏟아졌다.
소낙비는 그 방울만큼이나 두터운 소리를 내며 둔탁하게 쏟아졌다.
후두두두둑 후두두두둑
후두두두 후두두두
쏴아 쏴아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던 빗줄기는
이내 사그라든다
호독 호독
뚜욱 뚜욱
뚝!
참, 쉽게도 간다


천년 만년 살 것처럼
함부로 거짓을 떠벌이고,
성을 내고, 미워하고, 악다구니를 쓰고,
업을 짓고, 죄를 쌓고...


이 생과의 이별이 바로
이 순간일 수 있음을 알기나 할까?


참, 쉽게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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