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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 Ever Really Loved a Woman - Bryan Adam, Everytime You Go Away - Paul Young

어머니 생각


                  이시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
 
생전 울리지 않던 전화가 이른 아침에 운다.
아들, 생일 축하해.
생일은 내일이에요.
오늘이 28일 아녀?
내일이에요.
...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 별 일 없지?
그냥 그렇죠 뭐.
지금이 너 낳은 시간이여.
너 낳고 웃을 일이 많았지.
아침 챙겨 먹어.
네.
전화를 끊었다.
고맙다는 말을 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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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구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 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

꽁꽁 언 넓다란 늪지에
한발남짓 겨우 난 물길 따라
까맣게 점점이 내려앉은 물오리떼
한강 물을 통째로 얼린 매서운 한파의 칼바람을
미동조차 않고 가녀린 몸으로 오롯이 견디고 앉았다.
그래, 가끔 살아있음이 고통이었던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언젠가 손끝으로 전한
잠깐의 온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찢어진 생채기가 아물고
시커먼 딱지가 내려앉고 새 살이 돋았지.
가슴의 못자국이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고통을 잊을만큼의 시간과
화해로 이끌만한 충분한 너그러움이 생겼지.
하지만 여전히 겨울바람은 매섭고
강물은 꽁꽁 얼어붙었고
손은 시리고 더 이상 온기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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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거름

 
                       진이정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

그동안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그렇더라


눈이 살짝 덮여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가
해가 나면 너저분한 길바닥이 다 드러나는 것처럼
창문 틈으로 빛이 들어오면
떠다니는 먼지가 다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아주 고스란히 다시 기억이 나더라
다행히 그 가슴시림은 아주 조금 덜어진채로...


그래 너나 나나 겪을만큼 겪었나?
다 좋은데... 그게 남으면 안되는데...
그게 말끔히 잊혀지면, 깨끗이 정리되면 좋은데...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어느 순간 벽보고 앉아
내 앞은 왜 이리 깜깜하냐고 통곡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냥 훌훌 털고 일어서서 나가면 되는데
이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걸어나가면 되는데
매일 아니 매순간이 새로운
이 시간을 즐기고 누리면 되는데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그렇게 허술하더라고...


지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웃으면서 얘기할 꺼리도 안되는데
바보같이 이러고 산다.


이 좋은 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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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결을 더듬다


                              길상호


그녀가 쓰던 나무주걱을 꺼낼 때
나는 지나온 길과 만나게 된다
나무의 결을 따라 깊이 새겨 있는
발자국, 그 소리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를 축축하게 적시는 여자,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마음에 묻고
그을음 어두운 부엌에 혼자 서서
뚝뚝 수제비 반죽을 떼 내고 있다
주걱 위에 올려진 새하얀 반죽이
손가락 끝에서 잘려 나갈 때
거칠게 일어나곤 하던 나무의 결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주걱 위에서
그녀 지워 버렸을까, 끓는 가슴에
하나 둘 응어리로 떠올랐을 얼굴
휘휘 저으며 익혀내고 있던 것일까
이제 다시 주걱의 결을 더듬어 보니
그녀 옹이로 단단하게 박혀 있다
결은 옹이 쪽으로 부드럽게 휘어
더 촘촘하게 파장을 그린다
그 상처를 쉽게 지나칠 수 없어
오래 서성이다 흘러가는 것이다
나무의 결을 더듬어 가며 나는
아궁이의 불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

허리도 굽고 어깨도 제대로 못 펴는
일흔 두살 딸을 보고
깊은 주름을 쓸어가며
아흔 넘은 엄마가 돌아앉아 훌쩍 훌쩍 운다.


스무살에 전쟁으로 과부 아닌 과부가 된 여인.
그 젊은 날을 어찌할 거냐고
딸 하나뿐이니 재가하라는 주변의 말.
그 말을 알아챈 딸은
엄마를 보내면 어찌될까 두려워
죽어라 악다구니를 쓰며
닥치는 대로 온 동네를 상대로 맞서 싸워야했다.


한평생 엄마를 붙들고 살아 온 딸.
자식을 낳고,
허리가 휘고 어깨가 내려앉도록
앞만 보며 달렸던 세월


딸은 아흔 넘은 엄마와 눈도 못마주치고
돌아앉아 훌쩍 훌쩍 운다.
내가 철이 없어

엄마 청춘을 다 뺏았다고.
내가 엄마 청춘 다 뺏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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