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결을 더듬다
길상호
그녀가 쓰던 나무주걱을 꺼낼 때
나는 지나온 길과 만나게 된다
나무의 결을 따라 깊이 새겨 있는
발자국, 그 소리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를 축축하게 적시는 여자,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마음에 묻고
그을음 어두운 부엌에 혼자 서서
뚝뚝 수제비 반죽을 떼 내고 있다
주걱 위에 올려진 새하얀 반죽이
손가락 끝에서 잘려 나갈 때
거칠게 일어나곤 하던 나무의 결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주걱 위에서
그녀 지워 버렸을까, 끓는 가슴에
하나 둘 응어리로 떠올랐을 얼굴
휘휘 저으며 익혀내고 있던 것일까
이제 다시 주걱의 결을 더듬어 보니
그녀 옹이로 단단하게 박혀 있다
결은 옹이 쪽으로 부드럽게 휘어
더 촘촘하게 파장을 그린다
그 상처를 쉽게 지나칠 수 없어
오래 서성이다 흘러가는 것이다
나무의 결을 더듬어 가며 나는
아궁이의 불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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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도 굽고 어깨도 제대로 못 펴는
일흔 두살 딸을 보고
깊은 주름을 쓸어가며
아흔 넘은 엄마가 돌아앉아 훌쩍 훌쩍 운다.
스무살에 전쟁으로 과부 아닌 과부가 된 여인.
그 젊은 날을 어찌할 거냐고
딸 하나뿐이니 재가하라는 주변의 말.
그 말을 알아챈 딸은
엄마를 보내면 어찌될까 두려워
죽어라 악다구니를 쓰며
닥치는 대로 온 동네를 상대로 맞서 싸워야했다.
한평생 엄마를 붙들고 살아 온 딸.
자식을 낳고,
허리가 휘고 어깨가 내려앉도록
앞만 보며 달렸던 세월
딸은 아흔 넘은 엄마와 눈도 못마주치고
돌아앉아 훌쩍 훌쩍 운다.
내가 철이 없어
엄마 청춘을 다 뺏았다고.
내가 엄마 청춘 다 뺏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