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트럭

                                               이동호


아버지는 신이셨다 트럭에 지구를 올려놓고 자주 출타 중이셨다.
지구는 짐칸에서 저 홀로 빙빙 돌아가고,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녁 무렵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작업복은 은하수에 젖어 반짝이고,
뉴스에서 열대야가 자주 거론될 때에는, 북극의 빙하를 까만 비닐 봉지에 가득 담아오기도 하셨다.
얼음과자를 먹고 있는 우리 머리를 아버지의 손바닥이 쓰다듬을 때마다
후드득 우리의 발등으로 별들이 떨어지곤 했다.


우리는 자갈이거나 모래였다. 아버지는 몇 포대의 시멘트와 물만으로 우리를 견고하게 만드셨다.
형은 한 가정의 든든한 바닥이 되었고, 나는 한 가정의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지구를 물려주시고 산 속으로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마음에 신전을 세웠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렸다.


두어 개의 쇠못과, 나사못 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아버지의 무덤을 방문하곤 할 때에는,
가끔, 손바닥으로 다 큰 우리 등을 쾅쾅 두드려주신 것처럼 하늘에는 천둥이 치고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곤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를 구부렸다 펴곤 했다.


아이들도 이제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날에는 일찍 퇴근하여 나는 내 자식들에게 신화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태초에 아버지의 트럭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멘트로 이 세상을 지으셨다.
그 속에서 우리들을 살게 하셨다.


세상 밖에는 아버지의 트럭이 정차해있고, 지구는 그 트럭 위에서
빙빙 돌고 있다.

.........................................................


오늘도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랐다.
자정무렵, 나는 집을 향해가고 있다.


무거운 머리를 벽에 기대고 천장을 바라 본다.
나는 내일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집을 나서서
지하철 한 구석자리에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주변의 저들이 그러하듯이.


이런 우리의 일상이 즐겁고 유쾌하며
활기 넘치고 희망적이기를 기도해 본다.


우리의 삶은 그러하다.
아버지, 당신의 삶이 그러했듯이.

  풀 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제비꽃 1 
  
           나태주
  
 
그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아
쓸쓸한 날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피었습니다.

.........................................................


진정한 아름다움의 비밀이 여기 있다.

아름다움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바라보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혼자 외롭지 않게 마주 보는 것

  들국화

                        김용택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

당신이 먼데서 날 보러 오고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당신은 내게

나는 당신에게

단 한번 피는 꽃입니다

.........................................

 
  들 국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 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

섬진강 시인 김용택 님의 가을 노래가,

들국화의 노래 두 편이 너무나 극적이다.


가을의 절대고독을, 그 고단한 갈망을

가을 한녘의 기다림을, 그 막막한 설렘을

몸과 마음으로 갈무리해내는 방식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누군가가 그리우면 아니, 그냥 그 무엇이 그리우면

너무나 몹시 그리워 가슴이 부서질 듯 시리면

나는 과연 둘 중 어떤 모양새로 감당하고 있는지...

아니 나는 도대체 어느 한 구석 시리기나 한 건지...


그래도 가을이 무척 많이 깊어졌다.

이 가을에

 

                                   이수인

 

이 가을에

그리운 얼굴 하나 없는 사람은 슬프다

 

가을이 오면

오랜 기다림 속에

피어난 해바라기처럼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이 있다

 

가을이 깊어

발 밑에 뒹구는 낙엽 속에서

보고 싶은 얼굴이 하나 있다면

그 사람은 마음의 등불 하나

밝히고 사는 사람이다

 

이 가을에

간절한 바람처럼

보고 싶은 얼굴 하나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스산함 저 뒤편에

따스한 마음의 등불 하나 밝힌다

...........................................


가을엔

 

                        이수인

 

가을엔

사람하나 보내도 좋다

눈 감고 있어도 피부로 느끼는 스산한 가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

 

낙엽이 떨어질 때

가슴에 묻어둔 사랑도 함께 보내라

마음에 담아둔 미움도 털어 버려라

낙엽이 쌓이는 초라한  길모퉁이에

가난한 연인들의 발밑에 밟히며

행복한 웃음을 듣고

이별한 연인들의 슬픈 사연도

들어주는 한 줌 낙엽이 되라

 

가을엔

사람하나 맞이해도 좋으리

가고 난 빈자리에

덩그라니 남아있는 텅 빈 의자

아름다운 저녁노을 바라보며

홀로 기도하는 여인보다

마주 보는 연인들의 눈길이

가을엔 한결 아름다우니

................................................

가을이 깊어가는 것은
 
점점 푸르러지는 하늘의 깊이로

낙엽이 구르는 소리로

가을비의 시린 감촉으로

비어가는 나뭇가지의 헐벗음으로

그리고 가슴 한 구석 묻어두었던 그리움의 발효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가을에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시인입니다.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433121

 

긁어다가 보세요...ㅎ.ㅎ...

  귀천 (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갈 대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

 

몇 해전

모 문학회 시상식자리에서

목순옥 여사님을 뵙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시냐고... 나도 목가라고...

그러자 손을 꼭 잡으시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신다.

'왜 목가냐고...'

나도 그 말에 목에 멨다...

소풍이 아름다웠다고만 말하기엔

아직은 너무 목이 멘다...

'명시 감상 1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택...들국화/ 들국 (두 편)  (0) 2008.11.03
이수인...이 가을에, 가을엔 (두 편)  (0) 2008.10.31
신용선... 갈대, 억새 (두 편)  (0) 2008.10.21
김남조... 편지  (0) 2008.10.07
나희덕... 귀뚜라미  (0) 2008.10.06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하는 
품격있는 전통 예술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제 76 회 목 요 예 술 의 밤

 

 

" 깊어가는 가을 그리고 외로운 사람 "

 

 

'누구나 외로워지는 가을 입니다.

" 가 례 헌" 에서 함께하시면 행복해 집니다.'

 

 

 

퓨전 타악 - 붐붐

대금산조 - 현바롬

민요 - 차미정, 임영미, 김인영

메나리제 - 이정애, 이지은

춤(입춤) - 이정옥

박정욱의 오락가락

 

 

 2008 10 23 목요일 19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공연문의 : 02. 2232. 5749
café.daum.net/gareheon

 

 

 

식사 - 가을 비빔밥 그리고 가을 잡채, 차실 - 보이차, 뒷풀이 - 목선철, 목상민의 추억의 노래

 

 

 

 

출처 : 박정욱 가례헌
글쓴이 : Wasi 원글보기
메모 :

갈대

 

                    신용선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사랑인 것을


그대를 잊기 위하여
살갗에 풀물이 밴 야영의 생애를
이끌고
바닥에 푸른 물이 고인 아득히 오래된
마을,
그대의 귀엣말보다 더 낮은 소리의 세상으로
내려가기도 했었네.


제 울음 다 울고 다른 울음 바라보는
아무 그리움도 더는 없는
키 큰 갈대가 되어
귀 기울여 바람소리 아득히 들리는
먼 강변에
홀로
서 있기도 했었네.

.......................................


억새

                          신용선


간결해지기 위해
뼈에 가깝도록 몸을 말리는
억새처럼


저절로 알아먹었던 유년의
말 몇 마디만 남기고
다 버리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갈기가 되어
달리다가 일어나고


달빛이 들면 있지도 않은 이별을 지어
손을 흔드는
억새처럼


속없이 살고 싶습니다.
눈물로도 와해되지 않는
세상의 일들 잊고

.........................................................................

말과 소리, 글과 눈, 가슴과 눈물, 그리고 바람...

스러져 누울 때까지 홀로 서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숙명을

그 누구인들 벗어날 수 있을까마는

가벼이 보내려 애 씀을 '삶'이라 할 밖에...

생전에 단 한번 마주치지 못한,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그의 발자취를,

그의 흥얼거림을 고스란히 뒤따라 가며 듣고 있다.

이 가을... 저 강변 어딘가에서, 저 산모퉁이를 돌면

다시 그의 노래가 들린다.

 

 

'명시 감상 1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수인...이 가을에, 가을엔 (두 편)  (0) 2008.10.31
천상병... 귀천, 갈대 (두 편)  (0) 2008.10.24
김남조... 편지  (0) 2008.10.07
나희덕... 귀뚜라미  (0) 2008.10.06
황지우...늙어가는 아내에게  (0) 2008.09.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