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끈이 있으니 연이다
묶여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줄도 손길도 없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 번
쓰러질 때까지
..............................................

끈이 있어 연이다
니가 있어 내가 있다
눈물이 있어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어 살아있다


내가 살아 있어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니 눈물이 나더라


눈물이 날까봐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마득히 먼 하늘 한 점이 된
가슴 한 구석 멍처럼 남은 연이 있다.


이 하늘 아래 어딘가
니가 있어 내가 있다
눈물이 있어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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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이동호
 

그는 나무다. 상록수다. 그의 입은 가지이고
그의 언어는 푸른 잎이다.
그가 나이테에 가둔 말을 풀어낸다.
그는 가지 가득 말을 올려놓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잎사귀를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푸른 빛이 시끄러울 뿐이다.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잎을 오물거린다.
잎이 점점 深綠色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 증거.
그가 역방향으로 자신의 가지를 흔든다.
사람들은 멀찌감치 멀어져서 곁눈질이다
사람들도 나무다. 단풍나무다.
방언이 깊어 사람들은 늘 가을이다.
불필요한 상징을 없애고 나면
늘 그와의 앙상한 거리를 드러낸다.
그와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삶이다.
그러나 그는 아픈 나무다.
자신의 말에 늘 찔리는 상록 침엽수다.
오늘도 대문 밖에서 그가 푸른 잎을 떨군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다
.........................................................

별 것없는 삶에 쓸데없는 고민이 덕지덕지 많이도 매달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들러붙은 헛걱정들...
떼어내려해도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내 삶이 고단한 건지,
내가 고단하게 생겨먹은 건지...
타다 남은 장작 더미에서 연기 피어오르듯
또 다시 잡생각이 폴폴 피어오른다.


생각에 큼지막한 브레이크가 하나 달려있으면 좋겠다.
성질대로 꾹꾹 밟아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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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2012년 하루 하루가 모두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새해에도 잔치같은 하루 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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